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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깊은 산속, 양구군의 한 마을. 좁고 한적한 도로를 한참 달리다 왼쪽으로 차를 꺾었다. 평평하게 다져진 땅의 삼면이 산에 둘러싸여 고요했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이었는데도, 산이 감싸고 있어서인지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비가 그치자 해도 잘 들었다. 볕이 잘 들고, 바람은 없고, 물이 가까이 있는 곳. 벌을 키우기 좋은 곳이다. 이곳은 17년차 양봉가, 박덕귀씨의 봉장이다. 그는 태풍이 와도 산이 막아주곤 했다는 이 좋은 곳에서, 지난 겨울 갖고 있던 거의 모든 벌을 잃었다.

“저 머리 빠진 것 좀 보세요. 원래 이렇지 않았어요.” 박씨가 인터뷰 중 자신의 벗겨진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지난 1월15일이었다. 박씨는 월동하던 꿀벌들을 깨우기 위해 벌통을 열었다. 추운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해 겉면을 담요로 단단히 감싸놓았던 벌통이었다.
뚜껑을 여는데 뭔가 허전했다. 벌은 없고 벌통에 넣어둔 소비만 보였다. 소비는 벌들이 벌집을 짓는 직사각형의 납작한 나무 틀이다.
평소같으면 이 판에 벌집이 잘 보이지 않을만큼 많은 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날은 벌들이 애써 만들었을 벌집만 남아 있었다.
월동 식량으로 넣어둔 화분떡(화분에 단백질과 비타민 등을 넣어 떡처럼 빚은 벌들의 먹이)도, 벌이 생산해 둔 꿀도 그대로였다.
벌집 안에는 미처 다 자라지 못한 벌 유충들도 죽어있었다.
“열어봤는데 벌이 한 마리도 없으니 얼마나 황당해요? 아이고 큰일났네, 하면서 또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박씨가 말했다.
“처음에 한 통만 봤을 때는 ‘이거 왜 이러지? 왜 벌이 없지?’ ‘밥은 많은데 벌이 없네?’ 했어요. 그 다음 통부터는 황당한거예요.”
그날 갖고 있던 420개의 벌통을 전부 열어봤고, 거의 모든 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라졌다’고 한 이유는 죽은 벌의 사체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찾은 박씨의 봉장에는 아직 버리지 못한 빈 벌통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빈 벌통을 열자 역한 냄새가 훅 풍겼다.
“냄새나죠? 쉰내. 이렇게 알을 놔두고 나갔어요. 이 안에 번데기가 들어있을텐데 이젠 다 죽었겠죠.” 벌집 구석에 붙어있던 꿀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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